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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종류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성명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대체로 삼국시대부터 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신라에는 박, 석, 김의 3개의 성이 있었다 하며, 고구려와 백제 또한 10여개의 성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지배층들만이 성과 이름을 제대로 갖추어 사용하였고 사실상 모든 국민이 제대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명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이 있고 1909년 민적법(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호적법)이 시행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호적제도가 시행되면서 모두가 성명을 가지게 된 것의 이면에는 잊혀져 간 우리의 이름 문화들이 있다. 이름을 정해 등록을 하는 것이 의무화되면서 이름을 바꾸는 것에 제약이 따르게 되며 하나의 이름을 쓰게 된 점이 바로 그러한데, 본디 우리 문화에서는 한 사람이 이름 외에도 자와 호를 가지고 때로는 별도로 속명을 가지고 이름과 같이 쓰이는 등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여러 개의 이름 속에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수의 자, 호를 쓰는 이러한 문화는 아무 이유 없는 예식과도 같이 비칠 수 있으나, 사실은 성명학적 근거에 기반해 기운의 흐름을 제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러한 품격 높은 우리 이름문화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조상의 지혜를 배워 보다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
본디 우리의 전통 예법에 의하면 남자 20세, 여자 15세가 되면 각각 관례(冠禮)와 계례라는 머리에 관을 올리고, 비녀를 꽂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관이나 비녀를 받아 성인임을 인정받으며 그 절차로 아이로서의 이름인 아명(兒名)을 버리고 비로소 자(字)를 지어 받는데 관례 시 받는 이 이름을 관자(冠字)라고 했다. 사회적인 성년을 인정받는 경계선에 성년으로서의 이름, 자를 받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자를 받고 나면 부모, 스승, 임금, 웃어른을 대할 때는 자신의 본명을 말하고, 동년배거나 손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자를 써, 명과 자를 함께 사용했다. 또한 다른 이를 부를 때에도 그 사람의 자를 불러 이름처럼 사용했다. 예로부터 이렇게 자로 상대를 부르고 자신을 칭함은 한 명의 성인으로서 서로 예와 품격을 갖추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를 지을 때는 본인의 기호와 함께 인물의 덕을 고려하여 짓는데, 여기에는 항렬자 등의 예법상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사주에 맞는 기운을 담은 이름을 짓는 의미도 있었다. 생활환경이나 위생관념 등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당시에는 어린아이들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아명은 보통 ‘쇠돌이’ 등 다소 경박하지만 힘이 강한 이름을 붙여 건강을 위했고, 유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아명이 아닌 본명을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입신양명에 뜻을 두고 펼치는 시기에 접어들면 그에 적합한 기운을 받을 수 있도록 새 이름을 받아 준비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는 때와 상황에 맞추어 기운을 다루던 조상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
호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붙이는 이름으로서, 편하고 쉽게 쓰도록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예법에 따라 하나 정해지는 본명(本名)이나 관례에 따라 짓는 자(字)와 달리, 호(號)는 현재의 필명과도 같은 것으로서 경우에 따라서 한 사람이 다수의 호를 지어 쓰는 경우도 많았으니, 그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여러 호를 나누어 사용하곤 했다.

아호(雅號)는 시문과 서화에 우아함을 더하기 위해 필명으로서 쓰는 호는 우아한 이름이라는 뜻으로 아호라 불렀다.
당호(堂號)는 원래 지의 본채와 별채에 따로 붙인 이름으로부터 따와서 붙인 것으로 건축물의 이름으로서 그 주인의 품격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또한 친우가 사람의 특징됨을 따서 지어 부르는 요즘의 별명과도 같은 것을 별호(別號)라고 했다.
출가한 여인은 보통 그 친정의 지명에 따라 ○○댁이라는 호를 써서 이름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택호(宅號)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호(諡號)는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을 따라 왕이 하사하는 이름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시호로는 이순신 장군의 시로인 ‘충무공’ 등을 들 수 있다. 시호는 생전의 공적이나 악행에 따라 그 뜻을 표현하여 지어졌으며 이는 신하의 선악을 구별하여 후대에 선을 권장하고 징계하는 의미를 품고 있었다.

사회계층이 확대되어 계층간의 만남의 기회가 늘어나며 예법상 쉽게 부를 수 없는 본명이나 자보다 쉬이 부를 수 있는 호의 사용이 촉진되고 더욱 일반화되었다. 예법과 의미에 맞춘 명과 자를 두고 이를 소중히 하는 문화와 용도에 맞춘 호의 사용 등은 이름이라는 것의 품격과 의미를 중히 여기는 전통의 예와 또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매력적인 우리 이름문화가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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